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30 챌린저 (문단 편집) == 개발 == 1942년 기준으로 영국에서 [[크롬웰 전차]]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크롬웰은 1940년에 제시된 요구사항을 기준으로 개발된 만큼 대구경 주포를 장착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롬웰보다 화력이 강한 전차의 필요성이 나왔다. 신형 전차는 크롬웰 차체를 기반으로 하고 [[17파운더]]를 자주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고화력 전차 개발이 시작되었고, 영국 전쟁성은 롤스로이스에게 A29, Birmingham Railway Carriage & Wagon에게 A30 프로젝트 번호를 할당한다. 롤스로이스가 설계한 A29는 장갑도 키워내서 45톤이라는 중량을 가졌는데, 45톤 중량은 과도하다고 판단되면서[* 과중량으로 인한 신뢰성 저하와 수송 문제가 예상되었다.] 채택이 거부되었다. 반면 35톤으로 계획된 A30은 개발이 승인되었다. A30의 개발은 롤스로이스의 전 임원이었던 윌리엄 아서 로보텀(William Arthur Robotham)이 주도했다. A30은 1942년 여름에 첫 시제차량이 완성되었지만, 개발 도중에 여러가지 불안한 문제들이 발견되면서 1943년 1월에 개선된 2차 프로타타입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2차 프로토타입에도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서 채택이 거부되었다. 또한 2차 프로토타입의 사격 테스트에서는 독일의 [[4호 전차]] 75mm 장포신 모델보다 장거리 사격이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장갑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과 17파운더의 특징인 느린 연사력 때문에 근접전에서는 더 불리할 것으로 여겨졌다. 1942년 1월부터 한동안은 결함 문제로 개발이 늘어지다가 1943년 5월부터 재개되었다. 동시기에 챌린저와 별개로 순정에 가까운 크롬웰 차체에 17파운더용 신형 포탑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 시도가 실패하면서 다시 챌린저의 개발이 결정되었다. 이외에도 동시기에 크롬웰을 대체하기 위한 [[코멧 전차]]의 구상도 시작되었지만 코멧보다 챌린저가 더 빠르게 배치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챌린저의 생산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미 1943년 2월 시점에서 고화력 전차가 급하게 필요한 영국군이 200대 가량 주문을 넣은 상태였다.[* 동시기 독일에서는 [[6호 전차 티거|티거 1]]이 배치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영국군은 17파운더로 무장한 고화력 전차가 급하게 필요했다.] 결국 A30이 영국군에게 채택되면서 챌린저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Challenger라는 C로 시작하는 이름을 받은건 당시 이름이 붙은 영국군 [[순항전차]]들의 네이밍 특징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부대 배치는 1943년 7월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챌린저가 채택될 무렵에는 크롬웰 전차의 무장 관련 한계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챌린저에게 좋은 소식이 되었다. 당시 개발중이던 A27M 크롬웰은 계획된 6파운더의 화력 부족을 염두에 두고 75mm 빅커스 HV 주포로 업건할 계획이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포탑의 한계로 이것조차 장착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크롬웰의 화력 강화가 실패하자 [[17파운더]]를 장착한 챌린저의 필요성도 증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